커피는 뽑는 건가, 타는 건가 [박영순의 커피 언어]


“한 잔의 커피를 만들다(Make)”를 일컫는 말은 여러 가지이다. 커피 가루에 들어 있는 유효 성분을 적절하게 빼내 음료를 완성하는 과정을 지칭하는 말 가운데 널리 사용되는 서술어가 “추출하다(Extract)”이다.

많은 현상을 포괄하는 용어일수록 사실 분별력이 떨어진다. 같은 의미이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표현이 달라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를 일일이 구별하여 구사하는 것이 커피를 즐기는 또 하나의 재미이기도 하다. 커피는 시대를 반영한다. 커피 언어에는 그 시대의 문화가 스며 있다.

“에스프레소를 뽑는다”는 표현은 초창기 머신의 작동이 주사기처럼 성분을 빼내는 것을 연상시킨 데에서 비롯됐다.

커피 음용 문화에서 제일 처음 나온 묘사어는 “커피를 씹다(Chew)”인 것으로 추정된다. 에티오피아나 남수단, 마다가스카르에서 처음 커피를 만난 유목민은 커피 잎이나 열매를 씹으면 카페인과 클로로겐산 등 생리 활성 물질이 나와 정신이 또렷해지는 경험을 했다. 이런 효과로 인해 호모 사피엔스는 커피를 소중하게 여기기 시작했을 것이다.

에티오피아 오로모족은 지금도 마른 커피 열매를 동물성 버터에 섞어 끓인 뒤 입에 넣어 오물거리며 성분을 빼내 먹는다. 수확기를 지나 말라비틀어진 채 나무에 매달려 있거나 땅에 떨어진 열매들을 버리지 않고 이렇게 해서 먹을 수 있다. ‘부나 칼라(Buna Qalaa)’라고 불리는 이 음용법은 “커피를 끓이다(Boil)”라는 용어를 낳았다.

커피가 아프리카에서 홍해를 건너 예멘으로 퍼지고, 이어 아랍권 전역으로 멀리 확산되는 과정에서 씨앗에 효능이 농축돼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됐다. 사막의 뜨겁고 건조한 환경에서 커피를 씨앗으로 보관해 이동하는 것은 매우 유익했다.

베두인들은 점차 커피 씨앗을 볶은 뒤 갈아 물로 성분을 추출함으로써 보다 높은 차원의 각성 효과를 즐겼다. 신을 직접 만나고자 했던 무슬림들에게 커피는 금욕주의를 실천하는 요긴한 도구가 돼 주었다. 커피가 금보다 비싸게 거래되던 그 시절, 원두를 최대한 가늘게 갈아 수차례 물로 달여내며 농축시키는 “커피 달임법(Decoction)”이 유행했다.

오스만튀르크가 합스부르크를 견제하기 위해 루이 14세 때 금으로 치장한 화려한 커피 문화를 선물하듯 전했다. 입맛이 까다로운 프랑스 귀족들은 커피 가루를 천에 넣어 끓임으로써 치아에 끼는 찌꺼기를 제거했다. “커피 우려내기(Infusion)”라는 말이 나온 시점이다.

우려내기가 보편화한 뒤 커피 대중화가 본격화하면서 편의성 또는 신속성이 중요해졌다. 이에 따라 커피 추출에 삼출(percolation)과 압력을 활용하려는 아이디어가 싹트게 되고, 훗날 에스프레소 머신의 등장을 이끌어냈다.

삼출식은 달임법이 지닌 잡미와 쓴맛이 주는 부담감을 극적으로 해소하진 못했다. “커피를 내리다(Drip)”라는 표현은 1908년 독일에서 시작됐다. 멜리타 벤츠 여사가 삼출과 여과를 통합한 드립법으로 커피 추출의 새 지평을 열었다. 종이 필터를 사용하는 동시에 커피를 물에 잠기게 하지 않고 드리퍼를 통과시킴으로써 지방산과 잡미를 획기적으로 줄였다. 1948년 아킬레 가지아가 레버를 당기면 9기압이 커피 가루에 가해지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개발한 뒤 “커피를 뽑는다(Pull)”는 말이 생겼다. 국내에서는 해방공간에 미군을 통해 인스턴트커피가 유입돼 블랙커피에 크림과 설탕을 섞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서서히 “커피를 타다(Mix)”라는 표현이 대세가 됐다.

커피 용어에는 문화가 꿈틀거린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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