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논점/김재영]與도 野도 ‘철도 지하화’… 실현 가능성 있나|동아일보


철도 지하화 공약 논란

《“주요 도심 철도를 지하화하겠다.” “우리는 모든 도시의 지상 철도를 지하화하겠다.” 4·10총선을 앞두고 정부와 여야가 경쟁적으로 ‘철도 지하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표심 잡기에 나섰다. 정부는 지난달 25일 교통 분야 민생토론회에서 전국 주요 도시 철도의 지상구간을 지하화하겠다고 밝혔다. 사업비는 약 50조 원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

정치권도 분주하다. 지난달 31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총선 격전지인 경기 수원시를 찾아 “도심 단절을 초래하는 철도를 지하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날인 이달 1일 더불어민주당은 경인선, 경부선 등 9개 철도 노선과 수도권 도시철도 5개 노선, 광역급행철도(GTX) 3개 노선 등 총 259km 구간을 모두 지하로 넣겠다고 맞불을 놨다. 여야 모두 “재원을 충분히 감안했다” “반드시 실천할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 철도 특별법 근거로 지하화 급부상

철도 지하화 요구는 지역민을 중심으로 오래전부터 계속돼 왔다. 지상 철도로 인한 도시 기능 및 생활권의 단절, 도심 토지 이용의 효율 저하, 철도 주변 지역의 쇠퇴와 노후화 등 다양한 도시문제를 야기해 왔기 때문이다.

1995년 첫 동시 지방선거에서 경부고속철도 도심 구간 지하화 공약이 나온 뒤 수십 년간 선거 때마다 나오는 단골 공약이기도 했다. 정부와 지자체마다 여러 차례 지하화 용역을 실시했고, 책상 서랍에 들어갔던 보고서를 선거가 다가오면 다시 꺼내 들었다. 하지만 조 단위로 예상되는 천문학적인 사업비를 마련할 방안을 찾지 못해 번번이 무산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철도 지하화 사업을 뒷받침할 법률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국회는 지난달 9일 ‘철도 지하화 및 철도 부지 통합개발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을 통과시켜 철도 지하화에 대한 제도적 걸림돌을 없앴다. 지금까지 철도 지하화는 노선을 신설하는 것이 아니라 지상 구간을 지하로 옮기는 사업이기 때문에 추가적인 교통 편익이 적어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기 쉽지 않았다. 재정사업, 임대형민자사업(BTL) 등 기존의 사업방식으로는 대규모 민간 자본을 유치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특별법은 지상 지역 부동산 개발로 발생하는 이익을 철도 지하화 사업 재원으로 쓸 수 있도록 통합개발 개념을 도입했다. 국가가 사업시행자에게 철도 부지를 출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고, 지하화에 필요한 비용을 우선 조달할 수 있도록 사업시행자가 채권을 발행하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추가했다. 또 지상 부분 개발 시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 기반시설 지원, 용적률 완화 등의 다양한 혜택을 주도록 했다.

현재 총선을 앞두고 전국 선거구에서 후보들마다 철도 지하화 추진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 정부는 난개발을 막기 위해 지자체의 제안을 검토해 사업의 우선순위를 정할 계획이다. 사업성이 높은 구간은 올해 12월까지 선도사업으로 지정해 다른 곳보다 1, 2년가량 빠르게 추진할 방침이다.

● 뉴욕 파리 등 입체도시 계획 활발

철도 지하화는 단순히 기존 철도노선을 지하로 넣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철도, 도로 등 교통시설을 포함한 공원, 광장 등의 공간시설, 공공·문화체육시설, 유통·공급시설 등 다양한 도시계획시설을 바탕으로 한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개발로 추진된다.

국내에서는 서울 용산구 마포구 인근에 조성된 6.3km 길이의 경의선 숲길이 대표적인 철도 지하화 사례로 꼽힌다. 옛 경의선 철길을 지하화하고 지상 지역을 녹지화한 뒤 공원으로 탈바꿈시켜 연간 885만 명이 찾는 도심 명소가 됐다. 청년층 등 유동인구가 늘면서 주변 상권도 활성화되는 등 도시 재생의 성공 사례로 거론된다.

해외에서도 도시계획 차원에서 철도 지하화를 활용하는 다양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2019년 1단계 개발을 마친 미국 뉴욕의 허드슨야드가 대표적이다. 한 위원장이 “육교와 철도 부분을 덮고 공원, 산책로, 맨해튼 스카이라인 같은 것이 생긴다 생각해 보라”라고 예를 든 그 사업이다. 기존 철도 기능을 유지하면서 위를 인공대지로 덮었다. 차량기지의 상부는 금융특별지구로 조성하고, 폐선 철도 부지는 하이라인파크로 만들어 빌딩숲과 결합된 도심명소로 탈바꿈했다.

1991년부터 추진해 2028년 완공 예정인 프랑스 파리의 리브고슈 프로젝트도 모범사례로 꼽힌다. 리브고슈는 센강 주변으로 철로를 따라 창고와 공장 등이 산재한 낙후지역이었다. 파리시는 기존의 철도용지 위에 인공지반을 만들고 그 위에 업무와 상업시설, 주거지, 교육시설 등이 들어선 자족 기능을 갖춘 공간을 계획하는 한편 아래로는 기존 기차가 통과하는 대규모 재개발을 계획했다. 이를 통해 6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경제문화의 중심지로 육성하고, 철도부지가 갈라 놓았던 센강과 13구역 거리를 연결했다.

이범현 성결대 교수는 “철도부지 개발은 새로운 도시공간 구조를 재구성하고 도시에 활력적인 장소와 매력적인 상권을 형성할 수 있는 부가가치를 창조하는 사업”이라며 “입체도시 계획의 일부분으로서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 천문학적 비용이 문제… 민자 유치 방안은 추상적

철도 지하화는 도시재생 차원에서 필요한 사업이지만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는 게 문제다. 2013년 서울시 용역 결과에 따르면 지하철 1·2호선 구간과 국철 경인선·경부선·경의선 등 서울 구간 86.4km를 지하화하는 데만 38조 원이 들 것으로 추산됐다. 2022년 서울시의 ‘지상철도 지하화 추진전략 연구 보고서’에선 기존 추정에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재원이 약 45조 원 소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지나치게 낙관적인 추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3년 사이 공사비와 원자재값이 급증한 상황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전국의 개발 현장에서 공사비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고 한강변 초고층 수직 개발 사업도 공사비 문제로 차질을 빚고 있다. 공사비와 인건비, 인근 지역 토지 가격 등을 감안하면 최소 2배 이상 들 것이라는 추산도 있다.

특별법이 생겼다고 해도 국비 부담 없이 민자 유치만으로 수십조 원의 사업을 추진한다는 발상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수익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민간사업자의 참여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용산 역세권 개발사업은 수익성 부족으로 민자 유치에 실패한 대표적 사례다. 2001년 논의를 시작했지만 2007년에야 삼성물산을 사업자로 선정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삼성물산이 사업권을 반납했고, 자금 조달 문제로 난항을 겪다가 2013년 사업을 결국 청산했다.

이승우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결국 상부 부동산 개발이 원활히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와 부동산 경기 침체를 감안할 때 조속한 추진은 어려울 것”이라며 “심각한 정체 상태에 빠져 있는 민간투자사업의 정상화, 건설 금융 PF 제도 개선 등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기술적인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해외 사례는 활용도가 낮은 철도나 폐선 부지를 활용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상에서 활발하게 운행하고 있는 철도를 그대로 운영하면서 지하화 작업을 함께 추진한 사례는 쉽게 찾기 어렵다. 대부분 도심 구간에 있어 공사기간 교통체증 등 민원도 피하기 어렵다. 당초 계획보다 사업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대만의 경우 타이베이 지역의 지상 철도 22.3km에 대한 지하화 사업을 1983년 시작했는데 30년이 지난 2013년에야 겨우 마무리됐다.

결과적으로 여야 후보들이 각 지역구에서 공약하는 대로 주요 도시 철도의 지하화, 모든 철도의 지하화가 한꺼번에 진행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사업성과 공공성, 도시계획을 꼼꼼하게 판단해 선도사업 한두 개를 선정해 제대로 성공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총선용 지역공약이 아닌 미래형 도시공간 개발 계획 차원에서 옥석을 가려 추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거 때마다 써먹는 공수표란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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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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