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죽어 사는 삶”…고독사 옆 고독한 노인들의 설날


9일 오전 박상봉(66)씨를 그의 방에서 만났다. 주보배 수습기자
설날 연휴가 시작된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청파동의 한 건물 2층에 사는 박상봉(66)씨는 오전부터 하루종일 TV를 보고 있었다.


2~3평짜리 단칸방에 사는 그는 명절이라고 해서 특별히 유난떨고 싶지 않았고 했다. 지난해 추석 연휴 고궁박물관을 찾았다가 삼삼오오 모인 인파 속에서 오히려 홀로 있는 자신이 창피했다는 그는 이번 설 연휴는 멀리 외출할 생각이 없다. 이날 오전 박씨는 평소 좋아하던 스포츠 중계 방송 대신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TV는 모니터 윗부분이 깨져 지직거렸다.

끼니 때가 되자 박씨는 홀로 공용 주방에 갔다. 한때 중국집 주방장이었던 박씨는 그곳에서 간단한 요리를 하곤 했다. 하지만 이날은 왠지 입맛이 없어 빵으로 식사를 대신했다.

박씨의 집은 이른바 ‘벌집’이다.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갈 좁고 길다란 복도를 가운데 두고 양옆으로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화장실도 다른 방 사람들과 함께 써야 한다.

CBS노컷뉴스 기자가 이틀에 걸쳐 박씨의 집에 머문 대여섯 시간 동안 한지붕 아래 마주친 이웃은 딱 한 명이었다. 인기척을 느낀 박씨가 문을 열고 이웃에게 빵을 건넸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간 것은 빵조각 뿐, 별다른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

“처음에는 수제비도 끓여 나눠 먹고 했는데, 지금은 아예 안해. 모든 게 귀찮아.”

나이가 들면서 기력이 달리고, 일부 이웃과는 마음도 맞지 않아 왕래가 잦아들었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이곳에는 총 5명의 노인이 산다.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박씨는 “모두 노인”이라고 했다. 노숙생활을 했던 사람들도 더러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실 지난달까지만 해도 한 명의 이웃이 더 있었다. 고(故) 정모씨는 지난달 어느 날, 방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향년 76세.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방치된 그의 죽음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박씨다.

“주말만 되면 경마 결과를 묻곤 하던 사람인데 일요일이 돼도 묻지 않아 문을 열어봤더니, 엎어져 있더라고.”

생전의 흔적조차 아는 사람이 없는 ‘故 정씨’

지난달 방에서 홀로 숨진 정씨의 방. 정씨가 숨진 후에도 방 안의 TV는 계속 틀어져 있다. 박인 수습기자지난달 방에서 홀로 숨진 정씨의 방. 정씨가 숨진 후에도 방 안의 TV는 계속 틀어져 있다. 박인 수습기자
청파동 주민센터와 이웃들에 따르면, 정씨는 2008년부터 약 17년 동안 기초생활수급자로 지냈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정씨가 세상을 떠나기 약 한 달 전에도 그와 통화를 했다고 전했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지난해 12월에도 6일과 21일에 각각 안부 확인 서비스 차원에서 전화를 했고, 대화도 나눴다”며 “특별히 ‘거동이 불편하다’ 등의 얘기는 없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생전에도 과묵한 편이었다고 한다. 이웃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맺은 편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민센터 직원들과 벌집 이웃들조차 그의 과거나 가족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무도 그의 생전 흔적을 알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셈이다.

정씨가 언제 숨을 거뒀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정씨가 숨졌다는 신고가 접수된 지난달 14일에도 그의 방 TV에서는 방송이 하염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민센터에서 기초생활수급자 등을 방문하는 서비스가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취약계층을 충분히 두텁게 보호하고 확인하기에는 여력이 넉넉치 않다.

청파동 주민센터에서 관할하는 기초수급자 가구 수는 지난해 12월 기준 1002가구인데, 이들을 돌보고 안부를 묻는 직원은 고작 8명에 불과하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지난해 11월쯤 김장김치를 나눠드리려고 집을 방문했지만, 만나지는 못해 문 앞에 김치만 놓고 갔다”고 말했다.

“못 죽어서 사는 인생”…그는 고립을 택했다

9일 박씨가 공용주방에 서 있다. 주보배 수습기자9일 박씨가 공용주방에 서 있다. 주보배 수습기자
정씨가 숨진 후 방치됐던 방을 털고 닦고 치운 사람은 다름 아닌 박씨다. 집주인은 차마 직접 치우지 못하겠다며 박씨에게 10만 원을 쥐어주고 치워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박씨는 지인에게 담배 한 보루와 저녁 식사를 사주고는, 정씨의 유품을 정리하고 바닥에 묻은 배설물과 혈흔도 함께 지웠다.

사실 박씨에게는 아들 하나와 딸 하나가 있다. 전 배우자와 함께 생계를 잇느라 바빴던 박씨는 자녀들을 돌볼 여력이 없어, 해외에 사는 친척에게 보냈다. 이후 전 배우자가 다단계에 빠져 큰 돈을 잃은 바람에 이혼했고, 박씨도 일용직 노동이나 노숙 생활을 전전하면서 자녀들을 볼 면목이 없어 스스로 연락을 끊었다.

“이렇게 사니까… 차라리 안 보고 살면 속이라도 편하지. 이런 데 와서 보고 가면 서로 마음만 아프니까. 이게 잘 사는 게 아니잖아. 어차피 못 죽어서 사는 삶이지.”

박씨의 이웃들 역시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이번 설 연휴에 아무 곳도 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에도, 지지난해에도 그랬듯이 말이다.

노인 빈곤율 1위, 노인 고독사 5년새 40% 껑충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11월 발표했던 보고서(한 눈에 보는 연금 2023)에 따르면, 국내 66세 이상 인구의 40.4%가, 76세 이상 인구의 52%가 빈곤한 것으로 조사됐다.


통계에서 말하는 ‘빈곤’의 기준은 가구 중위소득의 50%보다 더 낮은 소득을 가진 가구를 뜻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가구 중위소득은 3454만 원이다. 빈곤 노인의 월 소득은 약 144만 원이 안된다는 뜻이다.

노인의 고독사 문제 역시 심각해지는 추세다.

고독사에 관해 정부가 처음으로 발표했던 통계(2022년)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 사이 고독사 수는 2412명→3048명→2949명→3279명→3378명으로 증가했다. 5년 새 약 40% 늘어난 수치다.

이화여자대학교 정순둘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 빈곤과 고독사 문제 등은 결국 지역사회가 함께 관심을 가져야할 문제”라며 “시·구, 주민센터뿐만 아니라 요구르트나 신문 배달 업체도 함께 네트워크를 구축해 꾸준하게 관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균관대학교 구정우 사회학교 교수는 “노인들끼리 교류하고 연결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하고, 양로원 등을 대체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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