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반복된 ‘약속 사면’ 논란…역대 정부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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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설 명절을 앞두고 단행한 임기 네 번째 특별사면을 두고 ‘약속 사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나온다. 형이 확정되지 않아 사면 여부가 불투명했던 주요 공직자 등이 사면을 일주일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에 앞다퉈 상고를 포기하면서 형을 확정 지었기 때문이다. 특별사면은 형이 확정된 사람만 받을 수 있다.


특히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두 사람은 사면이 결정될 때까지 확정된 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김 전 장관은 ‘국군 사이버사 댓글 공작 사건’, 김 전 실장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각각 징역 2년의 실형이 확정됐다. 김 전 장관은 파기환송심에 불복해 재상고했다가 지난 1일 돌연 취하했다. 김 전 실장은 스스로 세 차례나 상고 의사를 밝히고도 재상고를 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상고 포기 후 하루도 수감되지 않은 것이다.

세월호 유족을 사찰한 혐의 등으로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 받고 법원에 상고장을 냈던 김대열·지영관 전 국군기무사령부 참모장도 지난달 31일 상고를 포기했다. 일반적으로 실형을 선고 받은 사람이 법적으로 다툴 기회를 포기한다는 것은 수감 생활을 스스로 감수하겠단 뜻인데 이들 네 사람은 형 확정을 계기로 외려 석방됐다. 사면 발표 직전 상고를 포기한 당사자와 대통령실과의 ‘사전 교감’ 의혹이 불거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다만 법무부는 논란에 대해 “사전 교감이나 약속은 있을 수 없다”고 일축했다.

DJ·노무현 때도 불거진 ‘사전 교감’ 의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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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사면’ 논란은 역대 정부에서도 여러 번 되풀이됐다. 대표적으로 김영삼 대통령 재임 시절 김우중 전 회장이 1995년 8월 대법원 상고 취하 7일 만에 사면된 일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2년 12월 특사 때 ‘외환위기 주범’으로 꼽힌 거물급 경제인을 줄줄이 사면했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김선홍 전 기아그룹 회장, 대우그룹 임원 등이다. 이용호·최규선 게이트 연루자인 김영재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는 사면 발표 9일 전 항소심을 포기해 사전에 밀약이 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보 비자금 사건에 연루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는 1999년 광복절 특사로 사면됐다. 당시 20여일 전 상고를 포기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특사를 노리고 재판을 포기한 것이란 비판을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임기를 두 달 남긴 2007년 12월 특사에서 측근인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신건·임동원 전 국가정보원장 등을 사면했다. 국정원의 불법 감청을 묵인한 혐의로 기소된 신·임 전 원장은 형이 확정된 지 겨우 나흘 만에 사면됐다. 두 사람 모두 대법원 상고 당일 곧바로 취하한 사실이 알려져 사전 조율 의심을 받았다.

사면권 통제 강화해야…해외 선진국도 ‘제한적 행사’


이렇듯 매번 논란이 불거지는 특별사면을 개선하려면 법 개정을 통해 사면권에 대한 외부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해외 선진국의 경우 사면권이 엄격히 제한되는 분위기고 통제 장치도 우리나라보다 강하다.

미국은 연방 규정에 따르면 실형을 선고 받은 사람은 석방 후 5년, 실형이 아닌 유죄를 받으면 형 확정일로부터 5년이 지난 이후에만 사면 청원을 할 수 있다. ‘약속 사면’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인 셈이다. 가까운 일본도 형 선고 후 일정 기간(유기징역 또는 금고의 경우 형기의 3분의 1)이 반드시 지난 뒤에야 사면을 신청할 수 있다.


프랑스의 경우는 부정부패 공직자나 선거법 위반 사범, 테러사범, 미성년자 폭행범, 마약 사범 등은 원칙적으로 사면이 금지된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도 살인 등 중범죄에 대해선 사면권을 행사할 수 없다. 덴마크처럼 행정부 고위 관료를 지낸 사람은 원천적으로 사면이 안 되는 나라도 있다.

사면 방식만큼 빈번한 횟수도 문제로 꼽힌다. 미국의 경우 두 번의 임기를 지낸 버락 오바마 대통령(1800여건)을 제외하면 모두 임기 중 사면 건수가 1천건 이하다. 우리의 수십 분의 1 수준이다.

김재윤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7년 논문에서 “미국 대통령은 사면권 행사와 대상 선정에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 우리 사면 제도와 가장 큰 차이”라고 썼다.

“법조계 목소리만 반영하는 사면심사위 실효성 높여야”

국회와 법조계에선 2008년 도입 이후 실효성을 잃어버린 사면심사위원회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심사 과정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려면 현재 법무부 장관의 위원 위촉 비중을 줄여 위원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15년 관련 연구보고서에서 “현재의 사면심사위는 위원장인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법무부 차관 및 실·국장, 판사, 변호사, 법학교수 등으로 법조계 인사가 다수라 사회 각계 의견을 반영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사면법은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제정된 후 거의 바뀌지 않았다. 2008년 사면심사위를 도입했고, 2011년 위원회 회의록을 사면 5년 뒤 공개하도록 명시한 게 사실상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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