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前총리, ‘70년 해로’ 아내와 동반 안락사|동아일보


학생 때부터 만난 93세 동갑 부부

남편 뇌졸중 후 아내도 건강 악화

“혼자 못떠나” 함께 손잡고 죽음 맞아

5일 동반 안락사로 ‘한날한시’에 세상을 떠난 드리스 판 아흐트 전 네덜란드 총리(왼쪽)와 부인 외제니 여사의 생전 모습. 네덜란드 라드바우트대(판 아흐트 전 총리의 모교) 홈페이지 캡처

드리스 판 아흐트 전 네덜란드 총리 부부가 5일 자택에서 문자 그대로 ‘한날한시’에 세상을 떠났다. 93세 일기로 동반 안락사를 택한 것이다. 판 아흐트 전 총리가 2009년 설립한 ‘권리 포럼’ 연구소는 70년간 해로한 판 아흐트 전 총리와 외제니 여사가 투병 끝에 “함께 손을 잡고” 죽음을 맞이했다고 밝혔다.

1977년부터 5년간 재임한 판 아흐트 전 총리는 학생 시절부터 만난 아내를 항상 ‘내 사랑(my baby girl)’이라고 부르는 등 애정을 드러낸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2019년 팔레스타인 추모 행사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이후 외제니 여사도 건강이 악화됐다. 두 사람은 서로 “혼자서 떠날 수 없다”고 해왔다고 권리포럼은 전했다. 유족으로는 세 자녀가 있다.

2002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한 네덜란드는 환자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으며, 치료의 가망이 없고, 죽고 싶다는 의지를 명확히 밝히는 등 6가지 기준이 충족될 경우 안락사를 시행하고 있다. 2022년 네덜란드에서 안락사를 택한 사람은 8720명에 이른다.

그런 네덜란드에서도 동반 안락사는 4년 전 처음으로 이뤄졌다. 2020년 13쌍으로 시작해 2022년엔 두 배 이상인 29쌍으로 늘며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대부분은 집에서 이뤄졌다. 두 사람이 자발적으로 신중한 선택을 내린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의료진이 반드시 한 사람씩 따로 의사를 물은 뒤 진행한다.

네덜란드 안락사 전문센터 대변인 엘커 스바르트는 동반 안락사가 드문 이유에 대해 영국 일간 가디언에 “두 사람이 동시에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 치료될 가망이 없고, 함께 죽음을 원할 가능성은 극히 적다”고 설명했다.

판 아흐트 전 총리는 네덜란드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공개적인 팔레스타인 옹호 활동을 시작한 인물이다. 가톨릭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기독민주당(CDU) 소속으로 정계에 입문해 법무장관과 총리, 외교장관을 연달아 지냈다. 이후 1999년 아내와 성지순례를 하던 중 팔레스타인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뒤 관련 활동에 나서기 시작했고 2021년 탈당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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