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손잡은 정치, 번영과 위험 사이 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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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2차대전때 과학자 동원 원자탄 개발
냉전시절엔 소련과 우주패권 경쟁 온힘
과학, 위기 때마다 국가의 권력 강화 역할
환경 파괴·네트워크 혼란 등 부작용 발생도
저자, 인류에 이롭게 과학 이끄는 길 모색

과학이 권력을 만났을 때/제프 멀건/조민호 옮김/매일경제신문사/2만3000원

 

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정부가 가장 먼저 기댄 곳은 과학자들이었다. 루스벨트는 이듬해 6월 백악관에서 매사추세츠공대(MIT) 전기공학과 교수 출신으로 과학계 인맥이 두터운 버니바 부시를 만났다. 루스벨트는 이 자리에서 정부와 과학계 및 산업계를 연결해 전시과학개발을 총괄하는 과학연구개발국(OSRD)의 수장으로 부시를 선임했다.

최근 과학기술의 지위와 역할이 확대되고 커지는 가운데 과학이 정치와 관계를 맺으면서 막강한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을 추적하고 바람직한 대안을 모색한 책이 나왔다. 왼쪽부터 인류의 첫 달 착륙, 코로나19 초기 위험성을 경시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 일본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 폭발 순간. 세계일보 자료사진

루스벨트는 세계대전 참전을 앞두고 부시에게 부탁했다. “우리가 이 전쟁에서 사상자를 최대한 줄이고, 가능한 한 빨리 전쟁을 끝낼 수 있도록” 미국 대학과 과학기술 분야 인재를 총동원해 달라고. 부시가 이끄는 OSRD는 루스벨트의 요청대로 다양한 무기와 약의 개발을 주도했다. 적기의 공격을 조기에 탐지하기 위한 레이더, 대잠수함 무기, 부상병 치료에 필수적인 페니실린, 일본의 항복을 받아낸 원자탄까지. 특히 군부가 좌익 전력이 있다며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꺼리자, 부시는 군을 설득해 오펜하이머를 책임자로 앉힌 뒤 원자탄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각종 전쟁, 다양한 종류의 전염병과의 싸움, 지구 온난화까지 인류가 재앙과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정치는 과학의 손을 잡았다. 역사적으로 국가는 전쟁, 경제 성장, 영광, 권력을 위해서 과학을 이용해 권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취해 왔다. 과학을 이용해 적국에 승리하거나, 경쟁국들에 힘을 과시했고, 번영을 모색하는 좋은 방법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고대에는 관개를 비롯해 식량과 물에 대한 지식과 공학이 매우 중요했다. 고대 수메르의 도시들은 중앙집권적이고 행정적인 편의를 위해서 산술을 발명했다. 권력의 영광을 위해서 과학기술이 동원되기도 했다. 예를 들면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당시 통치자들이 마법 같은 조각 작품이나 건축물을 통해 주변 세력에 부와 권력을 과시하는 데 쓰였다. 과학과 국가의 관계는 18세기 후반 이후 급속한 가속을 밟게 됐고, 20세기 초에는 많은 강대국이 과학산업 복합체를 형성해 과학을 전쟁과 경제에 적극 활용했다. 냉전 시절인 1957년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에 성공하자 미국은 우주패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에 과학계에 돈을 쏟아붓기도 했다.

정치에서 과학이 중요해지면서 정치와 과학 간 역학 관계도 서서히 변화했다. 급기야 현대 사회는 전염병 예방이나 기후변화 대응, 환경 보존, 자녀 양육 등 집단 결정의 대부분을 과학에 의존하고 있다. 이 같은 과학 우위 현상은 헤겔이 책 ‘정신현상학’에서 설파한 ‘주인과 하인’ 간 권력관계의 변화와 비교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과학 역시 새 가능성뿐만 아니라 새 위험을 낳을 수 있고, 실제 낳고 있다는 사실은 명확해졌다.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핵전쟁 위협, 수많은 생물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는 방사능 유출, 독극물 오염,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컴퓨터 네트워크, 자연을 파괴할 수 있는 환경 오염, 신규 병원체 등등.

아울러 불안전하다는 것도 드러났다. 과거와는 달리 더 모호하고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게다가 과학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도 밝혀졌다. 과학자들은 스스로 정책을 만들 수 없으며, 그럴 수 있는 기술도 의향도 없다. 왜냐하면 과학이 바라보는 시야는 매우 좁고, 오로지 가능한 것만을 보기 때문이다.

지금 과학의 권위 확대로 인한 정치와의 마찰과 불협화음도 커지고 있다. 핵무기, 인공지능(AI) 기술, 기후변화, 생태계 파괴, 우울증, 전염병…. 과학이 연루된 위험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과학이 초래한 수많은 문제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과학을 어떻게 관리하면 그 이익은 취하면서도 위험을 피할 수 있을까.

제프 멀건/조민호 옮김/매일경제신문사/2만3000원

세계적인 정책 전문가이자 사회혁신 분야 권위자인 저자는 신간 ‘과학이 권력을 만났을 때’에서 상호의존적인 과학과 정치의 관계를 주목한 뒤 서로의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막강한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이 과정에서 과학의 위험에 대한 우려가 커지게 된 과정과 이유, 정부·과학계와 부딪치면서 직면한 문제를 살핀 뒤 과학과 정치 간의 바람직한 관계와 그 방법을 모색한다.

저자는 과학이 공익보다는 정부나 기업의 이익에 더 자주 이용되는 현실을 비판하면서 그 원인을 과학의 거버넌스가 아직 민주화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진단한다. 즉, AI라든가 사이버 보안, 합성생물학과 관련해 거버넌스 측면에서 아직 제도적 맹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공공 영향력도 현저하게 감소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과학의 정치화’와 ‘정치의 과학화’를 통해서 과학의 힘을 인류 공동의 희망과 일치시키는 길을 모색한다. 즉, 과학은 스스로 한계를 명확히 하고 끊임없이 성찰하는 분야로 재탄생해야 하고, 정치는 종종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과정으로 빠져드는 과학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만큼 충분한 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학계가 더 윤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독려할 수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인류에게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는 과학을 우리의 가장 강력한 동맹으로 만들려면 그 과학을 이끄는 수많은 권한과 결정은 결국 정치에서 나와야 한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왜 배워야 하는지 등의 인지 활동인 메타인지의 중요성을 강조한 뒤 순환적 사고와 지식 간 융합을 주장한다. 아울러 각 도시와 국가를 대표하는 과학 전문가, 정치인, 대중이 한곳에 모여 ‘지식 공유지’ 역할을 하는 ‘과학기술협의체’ 구성도 제안한다. 여기에 위험 파악과 대응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현대 과학과 권력, 민주주의 제도 사이의 연계와 긴장에 대해 시의적절하고 도발적이며 건설적인 탐구를 진행한 책은 우리에게 17세기 영국 왕립학회의 슬로건을 다시 선명하게 각인시킨다. “눌리우스 인 베르바(Nullius in verba), 누구의 말도 그대로 믿지 말라.”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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