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법 “텍사스주 불법 이민자 추방 허용”…백악관 “동의 안해”|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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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우위인 미국 연방대법원이 19일 “주(州)정부 직권으로 불법 이민자를 자체 추방할 수 있다”고 규정한 텍사스주 이민법의 시행을 일시 허용했다. 야당 공화당 소속인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가 지난해 12월 서명한 이 법은 당초 5일부터 시행 예정이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이민 정책에 대한 연방정부의 권한을 침해한다”며 소송을 제기해 2심 격인 항소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날 대법원은 항소법원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텍사스주가 자체 이민법을 시행할 수 있도록 했다.

11월 대선에서 맞붙을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민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민 의제가 대선의 주요 쟁점으로 부상한 가운데 이민 정책의 집행 권한이 연방정부와 주정부 중 어디에 있느냐를 둘러싼 논란도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은 즉각 성명을 내고 “대법원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 텍사스주 손들어준 ‘보수 우위’ 대법원

대법원은 이날 텍사스주 이민법 ‘SB4(Senate Bill 4)’의 집행정지 명령을 해제한다고 밝혔다. 이 법의 핵심은 주 사법당국이 직권으로 불법 이민자를 체포, 구금, 추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텍사스주가 이 법을 통과시키자 바이든 행정부는 ‘이민 집행은 연방정부의 관할이며 불법 이민자에게도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는 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연방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여 법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그러나 2심을 맡은 제5 연방순회 항소법원은 판결 전까지 법 시행을 일단 허용한다는 ‘행정유예(admiistrative stay)’ 결정을 내렸다. 바이든 행정부는 유예 결정을 취소해달라고 대법원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날 결정에는 9명의 대법관 중 보수 성향 6명이 찬성했고 진보 성향 3명이 반대했다. 이민, 낙태 등 문화전쟁 의제를 둘러싼 대법원 내 구도를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대법원은 1973년부터 49년간 유지됐던 연방정부 차원의 낙태권을 대법원이 2022년 6월 폐기했다. 이에 이날 판결이 이민정책에 대한 연방정부의 권한을 인정해온 기존 판례를 뒤집을 가능성 또한 시사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2010년 애리조나주가 불법체류 의심자를 조사해 구금할 수 있도록 하는 이민법을 통과시키자 당시 대법원은 위헌으로 판결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대법원의 이념 성향이 완연한 보수 쪽으로 바뀌면서 이런 기류에 변화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이날 결정에 반대한 진보 성향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이 소수의견을 통해 “이 결정이 이민법 집행에 더 큰 위기를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한 것도 이 때문이다.

● 공화당 우세州 , 자체 이민법 제정

이번 판결이 공화당 우세 지역인 다른 주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아이오와주는 이날 미국에서 추방되거나 미국 입국이 거부된 이민자가 아이오와주를 방문하는 것을 범죄로 규정해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앞서 15일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주지사 역시 과거 추방된 불법 이민자가 플로리다에 방문하면 중범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오랫동안 연방 정부의 독점적 영역이었던 이민 문제를 공화당 소속 주지사들이 직접 다루려는 의지가 커지고 있다”고 평했다.

이번 사안이 국경을 맞댄 멕시코와의 외교 문제로 비화할 조짐도 보인다. 멕시코 정부는 텍사스주가 이민법에 따라 불법이민자를 추방해도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이민정책은 주정부가 아닌 연방정부끼리 협상할 문제”라고 밝혔다.

이로 인한 사회 갈등이 커지면 이미 이민 정책을 두고 적지 않은 비판을 받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도 타격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줄곧 “바이든이 불법 이민자 급증을 방치하고 있다”고 공격하고 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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