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보다 참혹해진 메시아의 미래… 영웅주의를 겨누다|동아일보


[선넘는 콘텐츠]〈3〉 영화 ‘듄 파트2’ 원작 비교

학살 벌어지는 비극적 聖戰 그려… 영웅 맹종에 대한 비판적 시각 강조

순종적 女 캐릭터엔 주체성 덧입혀… ‘듄친자’ 등 국내 관객 150만 모아

모래 행성 아라키스를 걷는 주인공 폴(티모테 샬라메).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웅주의에 대한 경고.

지난달 28일 개봉한 영화 ‘듄 파트2’는 원작 소설보다 이 점이 두드러진다. 주인공 폴(티모테 샬라메)이 꿈에서 참혹한 미래를 보는 장면을 곳곳에 배치해 비극적 결말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성전(聖戰)이라는 허울을 내세워 서로를 죽이고, 굶주림에 죽어가는 인류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방대한 세계관을 이해해야 읽을 수 있는 원작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장치다. 그 덕에 영화는 ‘듄친자’(듄에 미친 자)들의 지지를 받으며 국내 관객 150만 명을 동원했다.

미국 작가 프랭크 허버트(1920∼1986)가 1965년부터 펴낸 원작 소설 ‘듄’(황금가지)은 6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원작에서 폴이 과거와 미래를 명확히 볼 수 있게 되는 시점은 1권 초반부다. 환각물질인 스파이스에 노출된 폴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게 되고, 확신에 차 원수인 하코넨 가문에 복수를 시작한다. 폴은 두려움 없이 전쟁을 이끌며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반면 영화에서 폴은 자주 망설인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복수하면 곧 참혹한 전쟁이 벌어질 거라는 생각에 고뇌한다. 영화 후반부에서야 ‘생명의 물’을 마시고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다. 카메라는 폴을 구원자로 맹신하는 이들을 자주 비춘다. 모래 행성 아라키스의 원주민 프레멘족은 폴을 ‘리산 알 가입’(외계에서 온 목소리)이나 ‘마디’(낙원으로 이끌어줄 자)라고 부르며 맹종한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가신(家臣)으로 폴에 복종하는 거니(조시 브롤린)는 복수를 외치며 하코넨 가문을 무자비하게 학살한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는 “영화는 소설보다 참혹하고 암울한 미래를 노골적으로 암시한다. 영웅 찬가가 아닌 ‘환멸’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극 중 폴의 연인 차니(젠데이아 콜먼)의 역할 변화도 돋보인다. 원작에서 차니는 폴을 사랑하고 돕는 순종적 인물이다. 반면 영화에서 차니는 메시아가 되려는 폴에게 경고를 던진다. 황제가 돼 다른 가문들과의 전쟁을 선포한 폴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다. 분노와 실망에 가득 찬 표정으로 폴을 떠나 홀로 사막으로 향하는 차니를 통해 영화는 영웅주의에 대한 비판을 강조한다. 김준혁 황금가지 주간은 “원작에서 순종적인 주변 인물에 불과한 차니가 영화에선 주체적 주인공이 된다. 폴의 대척점에 선 반동자”라고 평했다.

이 같은 각색은 허버트가 고민한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다. 영화를 연출한 드니 빌뇌브 감독은 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허버트는 원작이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를 담기를 원했지만 1권 출간 후 독자가 자신의 의도를 잘못 이해했다고 느꼈다”며 “자신의 생각이 확실히 드러나도록 (폴이 회의를 느끼고 지도자가 되기를 포기하는 내용의) 2권을 썼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개봉한 영화 ‘듄 파트2’에서 폴의 연인 차니(젠데이아 콜먼·오른쪽)가 폴(티모테 샬라메)의 얼굴에 손을 댄 채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다. 차니는 원작 소설에선 폴을 따르는 순종적인 여성이지만, 영화에선 영웅이 되려는 폴에게 경고를 던지는 
주체적 인물로 묘사된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지난달 28일 개봉한 영화 ‘듄 파트2’에서 폴의 연인 차니(젠데이아 콜먼·오른쪽)가 폴(티모테 샬라메)의 얼굴에 손을 댄 채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다. 차니는 원작 소설에선 폴을 따르는 순종적인 여성이지만, 영화에선 영웅이 되려는 폴에게 경고를 던지는
주체적 인물로 묘사된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여성의 주체적 서사가 강조된 점도 눈길을 끈다. 극 중 폴의 어머니 레이디 제시카(레베카 페르구손)는 폴에게 영웅이 될 것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유도한다. 이에 비해 원작에선 남편을 잃고 당황해하며 뒤에서 폴을 도울 뿐이다. 또 영화에선 대가문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초능력 여성 집단 ‘베네 게세리트’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베네 게세리트 소속인 일룰란 공주(플로렌스 퓨)는 황제에게 자주 조언하고, 레이디 마고트(레아 세두)는 하코넨 가문의 후계자를 매혹적으로 유혹한다. 겉으론 남성이 지배하는 세계를 사실상 움직이는 건 여성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셈이다.

원작의 독백을 최소한으로 줄인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원작은 영웅이 되기를 결정하는 폴의 심리를 소설 지문으로 독자에게 전달한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1984년 작 영화 ‘듄’이 내레이션을 통해 폴의 심리를 전해 지루하다는 평가를 받은 반면, 이번 영화에선 독백을 거의 없애 속도감을 높였다. 영화에서 우주를 지배하는 대가문들에 대한 설명이 생략된 점도 특징이다. 곁가지를 쳐내 폴의 이야기에 대한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이다.

미장센도 특기할 만하다. 빌뇌브 감독은 하코넨 가문에서 벌어지는 음모들을 흑백 화면으로 보여준다. 하코넨 가문의 행성에선 태양이 검다는 원작 내용을 시각적으로 살려낸 것.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제복은 나치의 파시즘을 연상시킨다. 모래로 가득한 아라키스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전투 신은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년)를 떠올리게 한다. 전홍식 SF&판타지 도서관장은 “1차대전 당시 중동에 파견된 영국군 장교가 아랍의 영웅이 되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서사는 이방인 폴이 원주민 프레멘을 이끄는 ‘듄’의 이야기와 닮았다”고 말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지금 뜨는 뉴스

Leave a Reply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