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 부담 제로화’ 추진… 빚내서 중산층까지 지원하나 [사설]|동아일보


서울 중구 한국장학재단 서울센터에서 한 직원이 ‘국가장학금’ 2차 신청 안내 포스터를 게시하고 있다. 2023.8.17 뉴스1

정부가 전체 대학생 203만 명 중 소득 하위 48%에게 주고 있는 국가장학금을 소득 하위 80%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가정 형편에 따라 학생 등록금 부담을 절반으로 줄여주기 위해 2012년 도입한 ‘반값 등록금’ 정책을 ‘등록금 부담 제로화’로 확대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중산층을 위한 학자금 초저리 대출과 대학생 주거비 지원 방안도 검토 중이다.

청년들이 학비 걱정 없이 능력과 의지에 따라 대학 교육을 받도록 하자는 취지엔 다수가 공감할 것이다. 정부의 고등교육 공교육비 지출액이 다른 선진국보다 작은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그럴 재정 형편이 되느냐다. 등록금 부담 제로화에 추가로 필요한 예산이 연간 1조5000억∼3조 원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국가 채무가 1000조 원을 넘은 데다 저출산 고령화로 세수는 줄고 부채는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지금도 소득과 재산을 합쳐 환산한 소득 인정액이 월 1145만 원인 가구의 자녀도 연간 최대 350만 원을 지원해 주고 있다. 고졸자가 낸 세금으로 중산층 자녀 대학 학비를 지원하는 것이 공정한가. 등록금 제로 정책이 정부가 빚을 내서라도 추진해야 할 만큼 급하고 중요한가.

등록금 부담 제로화가 노동시장과 대학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도 따져봐야 한다. 우리나라 청년들의 대학 교육 이수율은 7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47%)보다 높지만 대졸자의 취업률과 고졸자와의 임금 격차는 OECD 평균보다 낮고 작은 편이다. 대졸자가 필요 이상으로 배출되니 대졸자의 하향 취업률이 높아지고 일자리와 학력 간 미스매치도 심각해지고 있다. 제값도 못하는 대학 졸업장 따느라 날린 기회비용까지 더하면 학력 과잉의 사회적 비용은 더 커지게 된다. 등록금 부담 제로화로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면 한계대학들의 구조조정이 지연돼 대학 생태계 전체가 붕괴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보수 진보 모두의 선거 공약에서 출발한 반값 등록금 정책은 고학력 백수들을 양산하고 대학에 등록금 동결과 장학금 확대라는 자구 노력을 강요하면서 대학 경쟁력까지 떨어뜨렸다. 그런데 정책의 부작용을 줄이기는커녕 선거를 앞두고 등록금 제로화로 문제를 키울 생각을 하니 딱한 노릇이다. 대학 경쟁력을 높이고 교육 기회를 확대하려면 대학에 자율을 보장해 혁신을 장려하고 정부 재정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집중하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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